제1대
미스터 올림피아, 래리 스코트

"보디빌딩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던 래리 스코트 (Larry Scott).
그는
1938년 10월 12일 아이다호 주 블랙풋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지구상의 남자들이 근육 운동에 빠져들기 시작한 후 그랜드 매스터 조 웨이더에 의해
창설된 세계 최고의 보디빌딩 대회인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탄생한 첫 번째 챔피언,
그가 바로 래리 스코트이다.
독실한
모르몬 교도로 알려진 래리 스코트는 캘리포니아 항공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으며
레이첼 아치카와와 결혼했고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에서의 우승과 은퇴 이후 퍼스널
트레이닝 회사를 운영하며 계속하여 보디빌딩과의 끈을 놓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는
당대 보디빌딩계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선수생활
중 그의 인기는 세르지오 올리바, 데이브 드레퍼, 척 사이프스 등 당시의 모든
다른 보디빌더를 압도적으로 능가했으며 제1대 미스타 올림피아에 등극하여 이듬해인
1966년 다시 한 번 왕관을 차지하면서 그의 인기는 절정에 달한다.
이후
은퇴하여 회사를 운영하며 아내인 레이첼과 함께 유타주에서 살면서 트레이닝 기술들을
정립한 교육자료를 만들어 후배 빌더들을 위한 교육에 힘쓰기도 하였다.
래리
스코트가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의 첫 번째 우승자라는
것.
즉,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보디빌딩 대회인 '미스타 올림피아'의 역사는 래리 스코트와
함께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후
기라성 같은 수많은 챔피언들이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의 왕좌를 거쳐 갔지만 래리
스코트가 모든 보디빌더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보다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첫 번째' 라는 수식어가
붙는 챔피언인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단지 '첫 번째 챔피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레전드"로 불렸던 것은 아니다.
변변한
보디빌딩 전문서 한 권 없었을 시대였음에도 과학적 트레이닝과 영양 처방을 통해
다른 모든 선수를 능가하는 육체를 만들어낸 그의 통찰력.
그리고
작은 키와 함께 보디빌더로서는 치명적 약점인 좁은 어깨를 가졌음에도 끝없는 노력으로
결국 그것을 극복해낸 그의 식지 않는 열정, 바로 그것이야말로 래리 스코트가 "전설"로
불렸던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그
어느 누가 래리 스코트 앞에서 골격적 핸디캡 따위를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래리
스코트가 후배들에게 남긴 진정한 정신적 유산은 "연구하고 노력하라, 식지
않는 열정만이 모든 것을 극복케 할 것이다." 라는 교훈일 것이다.
미스터
아메리카, 미스터 유니버스, 미스터 올림피아를 모두 석권하며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로서 살았던
래리 스코트는 그렇게 은퇴 후에도 의미 있는 보디빌딩 인생을 살았고 2014년, 75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는
살아생전에도 전설이었으며 이제는 "영원한 전설"이 되었다.
1991년,
래리 스코트는 IFB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보디빌딩이란
스포츠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오랫동안 래리 스코트의 이름은 보디빌딩 애호가들의 가슴에 명예롭게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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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스코트의 우승 타이틀 -
1960
AAU Mr. California
1960
AAU Mr. California (Most Moscular)
1962
IFBB Mr. America
1963
IFBB Mr. Universe (Medium)
1964
IFBB Mr. Universe
1965
IFBB Mr. Olympia
1966
IFBB Mr. Olympia

